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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 '대한민국' 결정 秘史




[다시 보는 1948년 대한민국 출범] [4] 국호, '대한민국'으로 결정하다
한민당은 '고려공화국' 주장… 이승만이 '대한민국' 밀어붙여
이선민 기자, 조선일보(2018.7.4, A21), 입력 2018.07.04 03:01

"국호 문제가 말이 많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으로 하느냐, 고려공화국으로 하느냐, 혹은 조선이라고 이름을 정하느냐, 혹은 한(韓)이라고 하느냐 하는 국호 문제가 많이 논의가 되었든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제헌국회의 헌법기초위원회 서상일 위원장은 1948년 6월 23일 헌법기초위원회가 마련한 헌법안(案)을 본회의에 보고하면서 국호(國號)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음을 밝혔다. 5월 31일 제헌국회가 개원한 뒤 구성돼 6월 3일 첫 모임을 가진 헌법기초위원회는 가장 먼저 국호 논의에 들어갔다.

당초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무난하게 결정될 것으로 예상됐다. 제헌의원들 사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생각이 많은 데다 정부 출범을 주도하는 이승만이 국호로 '대한민국'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제헌국회 개원식 식사(式辭)에서 '대한민국 30년'을 내걸었고, 그가 이끄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공식적으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립촉성국민회와 함께 제헌국회의 양대 세력이었던 한국민주당이 '고려공화국'을 국호로 내놓으면서 논의가 복잡해졌다. 광복 이후 전개된 국호 논쟁에서 우파는 '대한', 좌파는 '조선'을 내세웠고 '고려'는 중도파가 선호했다. 그런 속에서 이승만·김구 세력과 함께 우파의 주축이었던 한민당이 '고려'를 주장한 것은 뜻밖이었다.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회 위원들이 이승만(앞줄 가운데) 국회의장과 자리를 함께했다. 헌법기초위원회는 정파별로 국호에 대한 입장이 달라서 격론을 벌였고, 결국 이승만이 영향력을 발휘해 ‘대한민국’으로 결정됐다.▶위 사진

헌법기초위원이었던 한민당 조헌영 의원은 언론 기고에서 '고려민국'을 국호로 제시하면서 '전 세계가 통용하는 우리나라의 국호인 것, 우리나라가 완전히 통일된 때에 쓴 국호인 것, 민족적으로 반감이나 대립감이 없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한민당의 '고려' 국호 지지는 당시 한민당을 이끌던 김성수의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는 '고구려'의 영광을 계승하자는 취지에서 '고려'라는 이름에 짙은 애정을 보였으며, 1946년 8월 보성전문학교가 대학교로 승격될 때 '고려대학교'를 교명(校名)으로 고른 바 있다.

한민당이 '고려'를 고집하면서 국호는 표결로 정하게 됐다. 헌법기초위원회가 헌법안 심의 첫날인 6월 7일 투표를 실시한 결과,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 '한국' 1표였다. '고려공화국'을 지지한 7명은 한민당 소속 헌법기초위원 숫자와 일치한다.

그러나 헌법안이 본회의로 넘어온 뒤에도 국호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됐다. 한민당은 '고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대한민국의 '대(大)' 자가 '대영제국' '대일본제국'처럼 자기를 높이고 남을 낮추는 과시의 발로라는 주장도 나왔다. '대한민국' 국호를 반대하는 입장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조봉암이었다. 그는 "새 나라를 건설함에 있어서는 해내해외(海內海外) 수백만 애국 동포와 선열의 혁명적 투쟁의 전통과 그 정신을 계승해야지 어떠한 명의(名義)를 답습함이 목적도 아니고 본의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뿐 아니라 국내외 다른 독립운동 세력들도 아우르는 국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국내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한 조봉암은 '대한민국' 국호가 임정의 테두리 밖에서 독립운동을 한 세력을 소외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이승만이 다시 한 번 정리에 나섰다. 이승만 국회의장은 7월 1일 제헌헌법안 제2독회를 시작하면서 "국호가 잘되지 않아서 독립이 안 되는 것이 아니니 3·1운동에 의하여 수립된 임시정부의 국호대로 대한민국으로 정하기로 하고 국호 개정을 위한 토론으로 시간을 낭비함으로써 헌법 통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합시다"라고 당부했다.이어 진행된 찬반토론에서 '대한민국' 국호를 지지하는 발언이 압도했다. 결국 이날 계속된 축조심의에서 국호는 '대한민국'이 찬성 163표, 반대 2표로 확정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04/2018070400180.html


한민족 통합돼 '大韓', 국민이 통치 주체라서 '民國'
양승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조선일보(2018.7.4.,A21), 입력 2018.07.04 03:01

3·1운동으로 정치사적 대전환… 臨政이 확인하고 제헌국회가 추인
'대한민국(大韓民國)'이란 국호의 기원은 1897년 10월 수립된 '대한제국(大韓帝國)'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로 쇠잔할 대로 쇠잔해진 조선이라는 국가가 생존을 위해 마지막으로 용틀임한 것이 대한제국의 선포였다. 그것은 나름대로 국내 개혁과 국제정치적 위상 재정립을 통해 망국(亡國)의 어두운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지만, 이미 치유의 한계를 넘어선 부패 구조의 심화와 당시 전개되는 국제정치의 역학 관계에서 처음부터 성공하기 어려웠다. 특히 '제국'이라는 명칭은 그 허구성으로 국제사회에서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안쓰러움과 허구의 명칭에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국가상이 제시되었다는 사실에 한국 근대사의 대역설이 있다.

대한제국 선포에 즈음해 고종 황제가 내린 반조문(頒詔文)을 보면 '대한'은 한민족이 살던 강역 전체를 지칭하는 '삼한(三韓)' 땅에서 한민족이 건설했던 국가들 모두의 새롭고 거대한 통합을 의미한다. 고조선과 삼국을 거쳐 고려·조선에 이르는 국가적 연속성을 통해 존속한 한민족이 이제 새로운 '큰 한'으로서 세계사를 주도하는 국가의 대열에 합류한다는 국가적 자존과 패기가 그 이름에 표명돼 있다. 통치의 주체는 황제로 격이 높아진 조선의 왕이기 때문에 '제국'이며, 제국의 표명은 무엇보다 중국에의 오랜 정치적 예속 상태가 종식됐다는 역사적 선언이다.

1919년 4월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임시헌장.우리 역사에서 ‘대한민국’이 국호로 처음 사용됐다.◀목록 사진

대한제국은 짧은 기간 존속하다 일본에 멸망했다. 망국의 역사적 책임을 전제군주에게 물으면서 새로운 국가 통치의 주체는 한민족 구성원 전체라는 이념의 표현이 '민국'이다. 정치사적 대전환의 결정적인 계기는 3·1운동이다. 3·1운동은 국가 통치의 주체가 더 이상 왕족이나 양반 귀족이 아니라 '민(民)', 즉 각계각층을 망라한 한민족 구성원 전체라는 점을 전 국민적 운동으로 확인한 사건이다.

한민족 역사상 최초인 그 거대한 사건을 계기로 발족한 임시정부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한 것은 필연이었다. '대한제국'에서 '대한'을 유지해서 민족사의 지속을 나타내고, '제국'을 '민국'으로 대체해서 망국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국가 통치의 새 주체를 확인한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현재의 국호는 임시정부의 그러한 결정을 1948년 제헌국회가 추인한 결과다.

대한민국이란 국호에는 그러므로 왜소함과 예속의 역사를 청산하고 국민이 통치 주체가 됨으로써 새로운 문명사의 발전을 주도하라는 국가적 소명이 함축돼 있다. 중국 중심의 패권주의적 정치 질서에서 벗어나 국가적 자존과 독자성을 유지하는 한편, 동아시아 문명의 공통된 유산을 발전시키면서 서양 문명과의 융합을 추구하는 과업이 부여돼 있는 것이다. 대한제국 이후 전개된 우리 역사는 망국의 오욕, 동족상잔의 비극과 더불어 온갖 부조리와 부정과 시행착오 속에서도 국가적 행운이 따르면서 서서히 그러한 역사적 과업의 실현을 위해 전진하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호에 예고된 운명의 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시인이 오래전 노래했듯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한 사물은 다른 것들과 구분되는 어떤 독자적인 존재로 드러난다. 오랫동안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공식 문서에만 존재하다가 2002년 월드컵 응원을 계기로 전 국민에게 불리면서 '그 무엇'이 되었다. 그 무엇은 이제 운동장과 거리의 구호를 넘어 국가 생활을 통해 진정으로 구현해야 할 영속적인 그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 국가로서 의미를 잃어버린 19세기 후반 조선 왕조와의 연속성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국가가 처한 대내외적 실상이나 세계사의 흐름에 눈감은 허구와 위선의 도덕주의에 사로잡힌 편협한 역사의식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국호에 함축된 심오한 사상을 깊이 되새길 때다.

공동기획: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04/20180704001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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