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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회 성명서

 

 

☞ 베스트칼럼


국가가 斷罪하지 못한 西海 NLL 利敵행위 목록

NLL을 지키려 한 세 장군은 좌천, 징계, 전역당하였다.
趙甲濟    
       *서해 NLL 반역 일지
  
  *1999년 6월15일: 제1차 연평해전. 한국 해군, NLL 침범 북한 함정 격침. 勝戰을 지휘하였던 박정성 사령관 사실상 좌천된 후 전역. 사건 직후 김대중 정부, 北에 유리하도록 交戰수칙 개정-'먼저 쏘지 마라'
  *2002년 6월29일: 김대중 정권하의 軍 수뇌부, 북한 해군의 확실한 도발 의도 정보('명령만 내리면 발포하겠다'는 취지)를 입수하고도 도발 의지 없다고 정보를 조작, 기습 허용, 참수리호 격침되고 6명 戰死. 軍 지휘부, NLL을 넘어와 참수리호 공격한 두 척의 북한 경비정을 우리 해군이 격침시키지 못하게 사격중지 명령. 사건 후에도 우발적 충돌이라고 북괴군 비호 시도. 도발 정보 입수, 보고하였던 한철용 소장은 징계당한 후 전역. 김대중 대통령은 戰死者 문상도 하지 않고 월드컵 결승전 구경차 일본行.
  *2004년 7월: 노무현 정권, NLL 침범한 북괴 경비정(참수리호 격침시킨 함정)에 경고사격 하였다고 국군 수뇌부 문책 압박. 조영길 국방장관 사임, 박승춘 정보본부장 사실상 강제전역.
  *2005년: 제주~부산 사이의 제주해협을 北선박에 개방. 北선박들, 해경 검문에 불응.
  *2007년 10월: 노무현, 김정일에게 NLL 수호 포기 의사를 전달하였다는 의혹이 진행중. 노무현, 평소에도 NLL은 영토선이 아니라고 강변, 미군이 땅따먹기 운운. 남북한 좌익정권은 NLL을 공동어로구역으로 만들어 무력화 시키려 하다가 김장수 국방장관의 고집으로 좌절.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폭침: 親盧 세력과 민주당 및 민노당 세력은 아직도 북한 소행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 하더라도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 돌림.
  *2010년 11월23일: 북한군, 연평도 포격, 4명을 죽임. 민주당과 민노당과 종북좌파 세력, 북괴군보다 이명박 정부를 더 비난.
  *2011년: 민주당과 민노당 등 종북좌파 세력, 북한 해군 활동을 견제하기 위한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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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살된 '결정적 도발 정보'
  
  국군 5679 부대는 對北통신감청을 主임무로 한다. 부대장 韓哲鏞 육군소장은 2002년 6월13일, 그날 있었던 북한함정의 서해 NLL(북방한계선) 침범과 관련한 결정적 정보를 입수했다. 6월14일 국군의 최고위 정보관계자 회의에서 韓 소장은 이 ‘민감한 특이 정보(교신 내용)’를 강조했다. 14일 합참 정보본부는 이 ‘민감한 특이 정보’를 빼고 북한함정의 침범을 ‘의도적 침범’이 아닌 ‘단순 침범’이라고 판단하여 예하 부대에 통보했다. 韓 소장은 6월27일의 북한 함정 NLL 침범 때도 도발 의도를 보여주는 결정적 첩보를 보고했으나 合參 정보본부는, 이 침범도 ‘단순 침범’이라고 판단했다. NLL을 지키던 한국 해군은 적절한 事前 경보를 받지 못하고 6·29 기습을 당한 것이다. ‘민감한 특이 정보’가 묵살된 이유는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어긋나는 정보를 축소-은폐하려는 분위기가 軍 지휘부에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란 것이 韓 소장의 생각이다. 韓 소장은 ‘햇볕정책을 뒷받침한다고 북한군의 도발징후를 쉬쉬 하다가 엄청난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1999년 6월 연평해전에서 우리 해군이 이긴 직후 金大中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4대 지침을 내렸다.
   “첫째, 북방한계선을 지켜라. 둘째, 먼저 발포하지 말라. 셋째, 상대가 발사하면 교전규칙을 준수해 격퇴하라. 넷째, 전쟁으로 확대되도록 하지 말라.”
   이 지침은 敵에 유리하고 我軍에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지시이다. NLL을 상습적으로 침범하는 敵의 함정에 “먼저 발포하지 말라”는 지시는, 결투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惡黨을 잡으러 나가는 보안관을 향해서 “절대로 먼저 쏘지 말고 악당을 잡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2002년 6월29일 서해상에서 기습을 당하여 죽은 여섯 명의 해군 장병은 金大中 대통령의 이 자살적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다가 敵의 아가리로 祭物처럼 바쳐졌다.
  
   반역적 사격 중지 명령
  
   2002년 6월29일 오전 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 684호는 砲身(포신)을 정조준 자세로 내렸다.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8호는 利敵的인 교전 수칙에 따른다고 경고사격도 하지 못하고 이 북한경비정에 500야드(457m)까지 접근하여 경고방송을 했다. 북한 경비정은 경고방송을 무시하고 시속 12노트로 남하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경고사격을 했어야 했다. 참수리 358호는 북한 함정 앞을 가로질러 지나갔을 뿐 경고사격을 하지 않았다. 햇볕정책이란 마취약이 국군 지휘부의 의지력을 마비시켜놓으니 아무리 뛰어난 장비를 가져도 쓸모가 없게 된 것이다.
   358호를 뒤따라 가던 참수리 357호가 南下하는 敵의 경비정 앞을 왼쪽 측면을 노출시킨 채 지나갈 때 敵船이 눈앞의 목표를 향해서 사격했다. 敵의 포탄은 참수리호의 조타실에 명중했다. 참수리호의 대원들은 조건반사적으로 응사했다. 敵船의 뒤로 돌아가 있던 358호도 북한 경비정 684호에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북한 경비정은 곧 무력화되었다. 이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주변의 우리 해군 함정이 무력화된 북한 경비정 684호와 이를 끌고가려고 NLL을 넘어온 북한 예인함정 388호를 격침시키지 않은 것이다. 684호에 기습을 받은 참수리호는 침몰했지만 우리 해군은 敵船을 보고도 보복하지 않았다. 사격 중지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金大中의 반역적 햇볕정책에 기초한 자살적 交戰지침이 국군 지휘부의 전투의지를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이 의도적 기습을 ‘우발적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6명이 죽고 19명이 부상한 기습사건의 피해자인 국군이 아니라 침략자 김정일 정권을 비호한 것이다. 韓哲鏞 5679부대장은 비망록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런데 합참 정보본부는 어느 특정집단의 대변자인 것처럼 ‘우발적’이고 ‘경비정 단독범행’이라고 계속 주장하길래 추가적인 자료 두 건을 갖고 정보본부의 입장에 반박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정보지원 미흡으로 조사하겠다고 천명하였던 것이다.>
  
   정보 수집 부대장은 옷을 벗고
  
   북한 함정의 기습 의도가 담긴 ‘특이 정보’를 보고했으나 상부에서 묵살 당했던 韓哲鏞 부대장은 사건 후에 정보지원 미흡이란 이유로 조사를 받고 자진 轉役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참수리호의 순직자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金 대통령은 사건 다음 날 일본으로 월드컵 경기를 구경하러 떠났다.
   6명의 해군 장병들이 戰死한 북한군의 기습사건에 대해서 MBC는 북한군을 비호하고 국군을 비난하는 왜곡 보도를 계속했다. MBC는 '꽃게잡이로 빚어진 갈등이 해상교전으로 확대된 지금 운운‘하는 兩非論을 폈고, 교전시엔 우리 어선이 철수했는데도 ’우리 군이 (우리 어선의) 불법조업을 묵인하고 있을 때 북한 경비정이 우리 어선쪽으로 내려왔다‘고 허위보도를 했다. 이런 왜곡보도를 지적한 月刊朝鮮을 상대로 판매금지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던 MBC는 敗訴했다. 西海기습으로 죽은 유가족들은 푸대접을 받았고 한 순직자의 부인은 조국에 절망하고 이민을 갔다.
  
   북한 함정에 경고사격했다고 국방장관과 정보본부장 몰아낸 노무현 정권
  
   김대중과 김정일 정권, 비겁한 국군지휘부, 그리고 어용방송이 직 간접으로 공조하여 NLL을 死守하려는 애국군인들을 모욕한 2002년 6·29 기습사건은 그 2년 후 비슷한 모양새로 再演되었다. 재향군인회의 인터넷 신문 코나스는 2007년 10월 이렇게 보도했다.
   <지난 10월17일 오전 서울 잠실 향군회관에서 열린 재향군인회와 성우회의 NLL 관련 對국민 성명서 발표회 자리에는, 3년 전 북한 해군 경비함의 NLL 침범사건과 관련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轉役한 박승춘 전 국방부 정보본부장(예비역 육군중장)이 참석해 당시의 사건 경위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당시 사건은 북한 경비함이 NLL을 不法남침하자 우리 해군이 수 차례의 경고통신을 보냈으나 북한이 이에 불응하자 경고사격으로 북한 함정을 격퇴시킨 것이다. 우리 측 경고통신에 대해 북한이 정당하게 응신했다는 북측의 억지 주장을 NSC(청와대의 안보회의)가 정당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작전에 참가한 우리 軍과 장병들을 조사하고 국방부에 사과성명을 내게 하는 등 북측 요구를 일방적으로 들어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격분한 朴 정보본부장은 당시의 작전상황(남북 간 교신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며 NSC의 부당한 사건처리에 맞섰다. 청와대가 그를 '國紀 문란자'로 몰아 징계조치를 취하려 하자 군의 명예와 부하 장병들을 보호한다며 스스로 군복을 벗었다. 정보본부장으로 보직된 지 2개월만에 전역을 한 것이다.>
   박승춘 예비역 장군의 발표문 全文을 소개한다.
  
   2004년 북한 경비함(등산곳684호) NLL 침범사건
  
   <2004년 7월 북한 경비함의 NLL 침범사건으로 전역한 박승춘 예비역 육군 중장입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일생을 바쳐온 존경하는 선배님들께서 이제는 편히 쉬셔야 할 나이에 이렇게 모이셔서 규탄대회를 해야 하는 현실을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2004년 NLL사건 내용을 공개석상에서 밝힌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2004년 NLL 사건 내용이 NLL을 死守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건개요
  
   ● 2004년 7월14일 16:47분 북한 경비함 등산곳 684호가 NLL을 侵犯時 우리 해군이 경고 사격으로 북한 경비함을 퇴각시킨 작전으로, 이 작전과정에서 북한 경비함이 我側 경고 통신에는 침묵을 지키면서 일방적인 북한의 주장을 我側에 3회 통보한 것을 북한의 應信으로 인정하여, 국방부내 지휘계통을 통해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NLL을 침범한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국방부에 사과 성명을 발표케 하고, 작전한 장병들을 처벌하려 한 사건입니다.
   ● 남북한은 '서해상에서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2004년 6월15일부터 국제공용 상선망을 활용한 통신망을 운영하기로 합의한 이후 1개월만에 북한 경비함이 NLL을 침범한 것입니다.
  
   정부의 NLL 침범 사건 처리과정에서의 문제점
  
   ① 북한 경비함의 NLL 침범 다음날인 7월15일 북한이 아측에 항의 전문을 보냈고, 7월16일 NSC상임위가 소집되어 우리 군을 사과시키고, 조사단을 구성, 조사를 결정한 점.
   ② 북한 경비함이 NLL 침범시 我 함정의 경고 통신에 정상적으로 응신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자신들의 주장을 ‘我 함정에 통보해 주었다고 한 것’을 정부가 정상적인 응신이라고 인정한 점.
   * 북한 電文 내용
   '우리측은 7월 14일 16시 41분부터 45분 사이에 국제해상 초단파 무전기로 3차례에 걸쳐 귀측을 호출하면서 제3국 어선들의 움직임을 통보해 주었으나 귀측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③ 북한 경비함이 제3국 어선들의 움직임이라고 我側에 3차례 통보한 내용은,
   - 북한 경비함이 NLL을 침범한 상태에서 '지금 내려가는 거 우리 어선 아니고 중국 어선이다'라고 NLL 침범을 기만하기 위한 통신과
   - 북한이 주장하는 NLL 즉 해상 경계선 수역에 我 선박이 침범했다고 통보한 것으로 군이 지휘계통을 통해 보고할 가치가 없는 내용이라고 판단한 것을 문제 삼은 것.
   ④ 북한 경비함의 NLL 침범시 我 함정의 3회의 경고통신에 무응답하여 남북 합의를 위반한 것은 북한인데, 我側에 보낸 電文에서는 역으로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 경계선에 我 선박이 침범했다고 我側에 통보했는데 我側이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我側에 항의한 것에 대해서는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⑤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함은 서해교전(2002. 6. 29)에서 我 해군 장병 6명을 기습사격으로 戰死케 한 북한경비함 등산곳 684호인 점.
   ⑥ 국가안보 최고 의결 기관인 NSC 상임위가 2004년 7월16일 소집되어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에 我 선박이 침범했다고 항의한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작전한 국방부를 사과시키고 我 장병을 처벌하려고 조사단 구성과 조사 착수를 결정한 점.
   ⑦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했는데 작전한 我 장병들이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장병들의 처벌을 막으려 그 실상을 언론에 공개한 것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본인을 '國紀문란자'로 지목한 점.
   ⑧ 실상이 밝혀지자 장병들의 처벌은 하지 못하고 대신 본인을 인사위원회에 회부 강제 전역시키려 한 점.
  
   * 본인은 인사위원회 회부 5분 전에 회부와 전역 택일을 요구받고,
   - 군과 부하를 위해 한 일을 가지고 불명예 전역 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 군 스스로 본인을 불명예 전역시켜 역사에 오점을 남기게 하고 싶지 않았으며,
   -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어 진술하다 보면 언론 공개시 본인을 보좌해준 부하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전역을 결심하였고, 2004년 7월 31일부로, 정보본부장 부임 2개월만에 전역하였습니다.
   이상으로 NLL 사건의 진상을 간략히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노무현 대통령은 서해교전에서 NLL을 사수하다 戰死한 장병의 추모식에는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고, 서해교전에서 우리 장병 6명을 기습 공격으로 戰死케 한 북한 경비정 등산곳 684호가 다시 NLL을 침범했는데,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작전한 우리 군을 사과시키고, 조사하고, 국기문란자로 몰아 전역시켰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평소 생각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NLL은 그리고 대한민국을 국민의 힘으로 지켜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그 선봉에 일생을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바쳐온 선배님들이 여기 서 있습니다.
   박승춘(전 국방부 정보본부장, 예비역 육군중장)>
  
   敵軍 편 드는 대통령과 장관
  
   박승춘 장군의 결론이 재미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해교전에서 NLL을 死守하다 전사한 장병의 추모식에는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고, 서해교전에서 우리 장병 6명을 기습 공격으로 戰死케 한 북한 경비정 등산곳 684호가 다시 NLL을 침범했는데,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작전한 우리 군을 사과시키고, 조사하고, 國紀문란자로 몰아 전역시켰다”는 주장은 盧 대통령의 군사적 利敵 행위 혐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2004년과 2002년 사건은 비슷하다.
   1.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국군 편을 들지 않고 오히려 敵軍 편을 들었다는 의심이 생긴다.
   2. 한철용, 박승춘 장군 등 애국군인들이 옷을 벗었다.
   3. 남북한 좌파 정권, 국정원, NSC, 방송 등이 敵軍의 시각에 서서 國軍을 협공했다. 2004년에 국정원은 자신들의 감청기록을 근거로 하여 국군이 북한군의 정당한 응신을 무시한 것처럼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한다.
   2007년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NLL을 피로써 지켜낸 국군의 死守정책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의 억지에 사실상 NLL을 넘겨주는 평화수역 등의 합의를 하고 와선 NLL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고 발언했다. 완전히 북한군 입장에서 我軍을 비난하는 투의 말이었다.
  
   두 차례의 결정적 정보를 묵살한 국방부
  
   2012년 7월호 월간조선은 2002년 6월29일 참수리호가 북한 경비정의 기습을 받아 격침된 사건 前後 국군의 對北 감시부대가 입수한 북측의 교신 내용을 분석, 김대중 정권의 군 수뇌부가 저지른 반역적 행동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6월13일 對北 감시부대는 북한 해군의 8전대 사령부와 NLL을 넘어 남침한 북한 경비정 간의 교신 내용 중에 매우 중요한 도발정보를 감청했다. 우리 고속정을 목표로 ‘발포’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국방부는 그러나 이날의 의도적인 NLL 침범을 ‘단순침범’으로 평가해 언론에 발표했다. 감시부대는 부대의견으로 관련 부대에 ‘의도적 침범’이란 평가를 전파하였는데, 국방부는 자신들과 동일하게 ‘단순침범’으로 수정해 다시 전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국방부는 6월20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은 북한어선 단속차 월선한 것으로서 단순침범”이라며 “서해 NLL은 평온하며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다. ‘발포’라는 도발용어와 쏠 무기까지 언급된 정보가 보고되었음에도 국방부는 국민들에게 허위보고를 한 셈이다. 對北 감시부대는 기습 이틀 전인 6월27일, 더 결정적인 도발정보를 수집해 국방부에 보고한다. NLL을 또 넘어온 북한 경비정이 북한 8전대 사령부에 '명령만 내리면 발포하겠다'는 취지의 보고를 하는 것을 감청한 것이다. 삼척동자라도 북의 경비정이 기습을 목표로 NLL을 계속해서 침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국방부는 또 다시 이 결정적 정보를 묵살, 기습을 불렀다.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린 자는 누구인가?
  
   월간조선은 이렇게 보도하였다.
   <북 경비정 684호와 또 다른 경비정 388호 등 총 2척이 NLL을 월선해 침범하면서 제2 연평해전은 시작됐다. (국군이 입수한) 교신 내용에 따르면, 북 8전대사령부는 신천중계소를 통해 오전 10시25분 교전이 벌어지기 약 1시간 전에 이미 “684호 등산곶 동남 4NM 구역 차지할 것”(오전 9시28분), “388호 등산곶 동남 6NM 구역 차지할 것”(오전 9시31분) 등 이미 경비정의 기동지시 구역을 NLL 이남지역으로 지정하고 있어, 명백하게 의도적 도발임을 보여주고 있다.
   388호는 우리 고속정 편대(2척)를 유인해 분산시킨 후 안전을 위해 기동하겠다고 8전대에 보고한다. 오전 10시15분 경비정 684호는 교전 직전 8전대사령부에 “고속정(참수리 357호)이 3NM까지 접근했다”라고 보고했고, 오전 10시20분 경비정 388호가 8전대사령부에 “고속정 두 척이 대기동하므로 혼란스럽다”고 보고한다.>
  <북 경비정 388호는 684호 뒤쪽으로 빠져서 위치한 다음, 전투상황을 중계했다. 오전 10시25분 8전대사령부가 “불당소리(포성) 들리냐”고 하자, 388호가 10시30분 “포성소리 들린다”고 보고한다.>
   참수리호를 기습한 북한 해군 388호 경비정도 우리 함정의 응사를 받아 침몰 직전이었다. 이때 이상한 '사격중지 명령'이 내린다.
  
   북한군, 보복 사격이 없을 것임을 안 듯
  
   2함대사령관으로 제1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끈 박정성(朴正聖) 제독은 여기에 의문을 던진다.
   “의문점은 북한 경비정 684호 단 1척이 우리의 해군 고속정 6척과 초계함 2척 등 총 8척과 대적한다는 것은 중과부적인 상황인데, 북한 경비정 388호가 전투에 가담하지 않고 뒤에서 한가하게 전투상황을 중계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해군이 보복응징 사격, 특히 초계함에 의한 76mm 함포의 보복응징 사격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과 확신이 없는 한은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76mm 함포 보복응징 사격이 사격 도중에 중지되고, 그 결과 다 잡았던 북한 경비정은 살아서 돌아갔다.”
   당시 敵의 기습공격을 받자, 정병칠(鄭炳七) 2함대사령관(2009년 폐암으로 사망)은 교전규칙에 의거, 보복응징 사격에 나섰다. 초계함의 76mm 함포 50여 발을 때려서 (참수리호를 격침시킨) 북한 경비정을 반 정도 가라앉게 하였다 . 이제 50여 발만 더 때리면 敵 경비정을 완전히 침몰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상급부대에서 사격중지 지시가 내려와 사격이 중지된 것이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박정성 제독은 “당시 중간에 사격중지 명령만 안 내려왔더라면 우리 해군은 제1 연평해전 때처럼 대승을 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면서 “만일 그렇게 했더라면 북한은 제1 연평해전 대패 때처럼 전의를 완전히 상실해 더 이상 對南 도발을 못 했을 것”이라 말하였다고 한다. 당시 해전 후 사격중지 명령을 내린 상급부대가 어디인지를 놓고 합참과 해군작전사령부는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에 바빴다. 참수리호와 전사자 여섯 명은 김대중 정권과 군수뇌부의 利敵행위에 의하여 바다 밑으로 가라 앉은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은 서해 NLL이란 戰場에서 敵軍에 유리하고 國軍에 불리한 交戰규칙, 정보판단, 사후조치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한편, 敵軍에 정상적으로 대응한 국군 지휘관들을 문책하고, 利敵행위자를 비호하였다. 이는 형법 제93조 與敵罪(여적죄)에 해당한다. 이들의 행위는 '敵國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抗敵한 자는 死刑에 처한다'는 규정에 정확이 들어맞는다. 김대중과 노무현 세력은, 민족반역자 김정일에게 영혼을 팔고 國益을 넘긴 역적들이었다


어버이연합, 김광진 막말에 "오냐" 응수
33년 전 오늘, 한 超人의 최후“각하, 진짜 괜찮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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