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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회 성명서

 

 

☞ 베스트칼럼


연평해전과 국정리더십

13년 전 오늘 이 시간에 연평도 근해에서는 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들이 우리 해군의 357호 참수리 고속정을 선제공격하면서  전투가 벌어졌었다. 월드컵 축구 경기가 고조되어 온 나라가 '대~한~민~국'을 외쳤고, 저녁 때가 되면 터키와 3-4위 전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일본에서 독일과 브라질이 결승전을 하는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하여 일본 수뇌부와 같이 관람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현재 시간 서해바다 연평도에서는 몇 명이 전사하고, 함정이 격침되고 있는데 ...

6월 초순 00대학 리더십 수업 때 이런 상황이 있었다고 소개하고, 자네가 당시에 국정리더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발표토록 했다. 1학년 새내기도 "나라면 일본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경기가 진행 중이라도 바로 귀국했을 것이다"고 했다. 그때 우리의 국정리더들은 어떻게 처신했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서 지금도 입다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2015.6.29, A30면)에 실린 성균관대 김태효 국가전략대학원장의 칼럼을 전재한다.

  '연평해전'이 묻는 국가의 존재이유

  영화 '연평해전'이 재연(再演)한 서해상의 30분에 걸친 전투 장면은 참담했다. 2002년 6월 29일 그날 오전, 참수리 357호의 31명 승조원들은 그들의 조국(祖國)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며칠 전부터 파악된 북한군의 이상 동태는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 공격에 사지(死地)로 내몰린 그들은 구급약통 하나에 의지한 채 피를 흘리며 응전했으며, 우리 군(軍)은 후퇴하는 북한 경비정에 대한 지원 세력의 사격을 중단시키는 기괴한 지시를 내렸다. 조타장 한상국은 으스러진 자신의 손을 핸들에 묶은 채 운전하다가 군함과 함께 침몰했다.

  이날 제2연평해전의 수병(水兵) 여섯 명의 희생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의 결과였다. 1999년 6월 15일 발생한 제1연평해전은 분단 이후 북한이 우리 영해에 침범하여 우리 군을 직접 공격한 최초의 사례였다. 먼저 함포 사격을 받고도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14분 만에 북한군을 완파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작전을 지휘한 박정성 해군2함대사령관은 갑자기 문책성 인사 발령을 받았다. 이후부터 우리 군의 대북 방위 태세와 교전 수칙이 지속적으로 약화되었고, 북한군은 3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우리 앞바다를 유린하였다. 제2연평해전의 생존자들은 그때 그 순간 적과 싸워 살아남지 못한다면 가족도, 친구도, 행복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전투에 임했다고 증언하였다. 하지만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하면 국민은 삶과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

  북한은 1953년 종전(終戰) 이후 지금까지 약 1700건의 침투와 1100건의 도발을 감행했다. 1980년대까지는 우리 국가원수를 겨냥하거나, 우리 국민을 납치해 가거나, 우리 국토에 침투하거나 하는 방법으로 우리 체제를 와해시키려 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하계올림픽 때는 공항과 여객기에 테러를 가해 국제 행사를 방해하려 했다. 1990년대 들어 공산권이 붕괴하고 남한과의 국력 격차가 커지면서 직접적인 도발 횟수는 감소한 대신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려는 대남 정치 심리전이 강화되었다. 사이버 공격은 단순히 고급 정보를 약탈해가는 수준을 넘어 디지털 한국 사회의 신경망을 장악하려는 시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남 도발의 장르와 수법은 다양하게 진화해왔지만 도발의 목표는 시종일관 단 하나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통제력을 와해시켜 북한식 사회주의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을뿐더러 공격을 받더라도 현장에서 일이 커지지 않게 수세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확신을 상대방에게 주는 이상 북한은 도발의 시점과 장소와 방법을 마음대로 정하는 자유를 누렸다. 그러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우리의 대응 전략이 도발 지점은 물론 지원 세력까지 응징하는 것으로 바뀌자 북한은 직접적인 군사 도발을 주저하기 시작했다. 전방 성탄 트리 점화나 대북 전단 살포 문제로 일촉즉발의 긴장이 조성될 때 북한 정권은 항상 우리의 태도를 보고 대응책을 결정했다. 우리 정부가 결의를 다질 때면 비공개로 타협을 요청해 왔고, 전전긍긍해할 때면 더욱 고압적으로 밀어붙였다.

  우리가 북한 정권에 친절하면 도발이 줄고 엄격하면 도발이 는다는 주장은 허구다. 오히려 그 반대다. 햇볕정책 10년 기간 동안 북한은 해마다 14차례가량의 대남 무력 도발을 일으켰다. 1998년 금강산 관광 사업의 출범을 전후하여 속초 앞 잠수함 침투 사건, 강화도 앞 간첩선 도주 사건, 여수 앞바다 반(半)잠수정 침투 사건 등이 발생했다. 두 차례의 연평해전 이후 들어선 노무현 정부를 상대로 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아예 무력화시키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6자회담이 지속되고 현금·에너지·식량 지원이 제한 없이 실시되었지만 북한 정권은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실험을 해가며 우리의 안보를 볼모로 삼고자 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각성을 계기로 대남 도발 횟수가 계속 줄다가 2012년 2회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북한의 도발 억지와 남북 대화는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 평화를 지키고 북한을 올바른 길로 유도하는 본질적 목표 앞에 둘은 동시에 충족되어야 할 덕목이다. 북한의 도발에 굴복하면 남북 간에 어떠한 정치적 합의가 나올지 모르지만 결국 평화와 남북관계 모두를 훼손하게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북한 정권이 원하는 남북 합의는 쉽고 빠르다는 점에서 달콤한 유혹과도 같다. 북한의 도발 위협 앞에 결연함을 잃지 않으면 남북 대화가 비록 험난한 과정을 겪을지라도 결국 하나씩 결실을 볼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정부는 조바심이 날 때마다 상기해야 한다. 국민 대다수가 월드컵 축제 분위기에 젖었을 때 바다를 지켰던 연평해전 용사(勇士)들의 외로운 희생을.<끝>


국정원 해킹관련 조선일보 김창균 칼럼
북한 선전에 이용당한 바보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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